전력산업 운영현황/전력시장 대전환

[전력시장대전환 39회] 탄소에 가격을 매기다

라파엘0929 2026. 7. 9. 15:05

탄소에 가격을 매기다 — 배출권거래제(ETS)가 전력가격을 흔드는 이유

전력요금 고지서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쓰는 전기 1kWh의 원가 안에는 이미 탄소의 가격이 녹아 있습니다. 발전소가 석탄이나 LNG를 태워 전기를 만들 때마다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에 값이 매겨지기 시작하면서, SMP(계통한계가격)도 조금씩 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배출권거래제(ETS)가 어떻게 전력가격에 스며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배출권거래제(K-ETS)란 무엇인가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기업별로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배출권)을 할당하고, 실제 배출량이 할당량을 초과한 기업은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고, 남은 기업은 팔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한국은 2015년 아시아 최초로 국가 단위 배출권거래제(K-ETS)를 도입했고, 발전 부문은 배출량이 가장 많은 업종 중 하나로 대부분의 발전사가 참여 대상입니다.

발전사 입장에서 배출권은 연료비에 얹어지는 또 하나의 비용입니다. 석탄발전 1kWh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탄소량이 LNG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배출권 가격이 오를수록 석탄발전의 실질 발전단가도 함께 올라갑니다.

배출권 비용이 SMP에 반영되는 구조

한국 전력시장은 급전순위(merit order)에 따라 가장 저렴한 발전기부터 순차적으로 가동하고, 그날 마지막으로 가동된 한계발전기의 비용이 그 시간대의 SMP로 결정됩니다. 배출권 비용은 이 한계발전기의 변동비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 한계발전기가 석탄일 때: 배출권 가격 상승이 SMP에 비교적 크게 반영됩니다.
  • 한계발전기가 LNG일 때: 배출권 비용 자체는 낮지만, 연료비 변동과 맞물려 영향이 커질 수 있습니다.
  •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시간대: 무탄소 전원이 한계발전기가 되면 배출권 비용의 SMP 영향은 사실상 사라집니다.

결국 배출권 가격은 화석연료 발전기가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시간대에서만 의미 있게 작동하는 셈입니다.

국내 K-ETS 현황과 과제

K-ETS는 도입 이후 여러 차례 계획기간을 거치며 유상할당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왔습니다. 다만 배출권 가격이 유럽에 비해 낮고 변동성이 크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이는 탄소가격이 발전믹스 전환을 유도하는 신호로서 충분히 작동하지 못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발전공기업의 배출권 비용 부담을 전기요금에 어떻게, 얼마나 반영할 것인가도 여전히 정책적으로 민감한 문제입니다.

해외 사례: EU-ETS와의 비교

유럽의 EU-ETS는 K-ETS보다 먼저 출범했고, 탄소가격이 톤당 수십~수백 유로 수준까지 오르내리며 실제로 석탄발전을 시장에서 밀어내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유럽 전력가격이 탄소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아직 그 정도의 가격 신호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어, 배출권거래제가 명실상부한 '탈석탄 촉진 장치'로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마무리

배출권거래제는 전력시장 참여자들에게 탄소의 값을 매겨 보이지 않던 환경비용을 가격에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아직은 SMP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탄소중립 목표가 가까워질수록 배출권 가격과 전력가격의 연결고리는 점점 뚜렷해질 것입니다. 다음 회차에서는 수소 에너지가 전력시장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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