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같은 대한민국인데 전기요금이 다를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전력 도매시장에서는 육지와 제주의 SMP가 완전히 따로 결정됩니다. 심지어 제주도에서는 햇빛이 좋은 날 태양광 전기가 너무 많이 생산돼 발전기를 강제로 멈추는 일(출력제한) 이 일상적으로 벌어집니다. 전기가 남아돌아 버리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그리고 이게 태양광 사업자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4회에서는 육지와 제주, 두 개의 SMP가 존재하는 구조적 이유와 그 파장을 파헤칩니다.
한국에 전력계통이 두 개 있다
우리나라의 전력망은 크게 육지 계통과 제주 계통 두 개로 나뉩니다. 제주도는 섬이기 때문에 육지와 전선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해저 HVDC(고압직류송전) 케이블 두 개(제주-해남, 제주-진도)로 연결되어 있지만, 이 케이블로 주고받을 수 있는 전력량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최대 전송 용량은 양방향 합산 약 400MW 수준입니다.
이 말은 곧, 제주도는 기본적으로 자기 전기를 자기가 생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육지에서 전기가 남아돌아도 제주로 마음껏 보내줄 수 없고, 제주에서 전기가 넘쳐도 육지로 다 빼낼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계통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수급 상황이 다르고, 결과적으로 SMP도 따로 결정됩니다.
제주 전력시장의 특수한 구조
제주도 전력시장은 육지와 비교해 여러 면에서 독특합니다.
발전원 구성부터 다릅니다. 육지에는 원자력·석탄·LNG가 고루 섞여 있지만, 제주에는 원자력이나 석탄발전소가 없습니다. 주로 LNG 발전기(한국남부발전 등)와 태양광·풍력 재생에너지가 전력을 공급합니다. 제주는 바람이 많고 일조량이 풍부해 일찍부터 재생에너지 보급이 활발했고, 현재 재생에너지 설비 비율이 전국 최고 수준입니다.
문제는 이 재생에너지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전기를 쏟아낼 때 발생합니다.
전기가 남아돌면 생기는 일 — 출력제한(Curtailment)
봄철 맑은 날 오후를 상상해보세요. 제주도의 수천 개 태양광 패널이 일제히 전기를 만들어냅니다. 제주 전체 수요보다 태양광 발전량이 많아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남는 전기를 육지로 보내려 해도 해저 케이블 용량이 한계에 도달합니다. 이 상황에서 KPX는 어쩔 수 없이 태양광 발전기에 강제 발전 중단 명령을 내립니다. 이것이 **출력제한(Curtailment)**입니다.
태양광 사업자 입장에서는 햇빛이 쨍쨍한데 발전을 못 하니, 그 시간의 수익이 통째로 날아가는 것입니다. 제주도에서 2023년 기준 출력제한 발생 횟수는 연간 수백 회에 달했고, 이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이제 본문과 시각화를 작성합니다.
제주 계통 구조 — 섬이라 생기는 근본적 차이
전국에서 전기가 부족한 지역이 생기면 다른 지역의 여유 발전소가 즉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육지는 전국이 하나의 망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주도는 다릅니다. 아래 그림처럼 육지와 제주는 해저 케이블 두 개로만 이어져 있고, 이 케이블로 주고받을 수 있는 전력량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습니다.

위 구조도에서 핵심은 딱 하나입니다. 육지의 여유 전력이 제주로 자유롭게 넘어올 수 없고, 반대로 제주의 남는 전기를 육지로 다 빼낼 수도 없습니다. 케이블 용량이 양방향 합산 최대 약 400MW로 제한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계통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니, 두 지역의 SMP는 수급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움직입니다.
제주 SMP는 얼마나 다를까? — 숫자로 보는 격차
아래 차트는 계절별·시간대별로 육지와 제주 SMP가 어떻게 갈리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봄·가을 태양광 발전량이 폭발하는 낮 시간대에 제주 SMP가 얼마나 무너지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차트의 계절을 바꿔가며 살펴보면, 봄·가을 낮 시간대에 제주 SMP가 육지와 얼마나 극단적으로 벌어지는지 바로 보입니다. 육지가 155원을 넘나드는 동안 제주는 10~20원대까지 추락합니다. 붉게 표시된 출력제한 구간은 태양광 발전기가 강제로 꺼지는 시간대입니다. 반면 여름과 겨울 냉난방 피크 시즌에는 제주의 수요도 높아져 두 계통의 SMP 격차가 크게 줄어드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주 태양광 사업자의 현실 — 두 가지 악재
제주도에서 태양광 사업을 운영하는 분이라면, 사실 이중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첫 번째 악재는 낮은 SMP입니다. 재생에너지가 급증하는 봄·가을 낮 시간대에 제주 SMP가 10~30원대로 무너집니다. 육지 사업자가 150원 이상을 받을 때 제주 사업자는 20원 남짓을 받는 것입니다.
두 번째 악재는 출력제한입니다. SMP가 낮을 때는 그나마 전기라도 팔 수 있지만, 출력제한 명령이 내려지면 발전 자체를 못 합니다. 햇빛이 쨍쨍한 최고의 발전 조건에서 강제로 발전기를 꺼야 하는 상황, 그 시간 동안의 수익은 제로가 됩니다.
이 두 가지 악재가 동시에 겹치는 시간대가 바로 봄철 맑은 날 오전 10시~오후 3시입니다. 제주 태양광 사업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간대이기도 합니다.
왜 이 문제가 갈수록 심해지는가
제주도의 재생에너지 설비는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지자체의 카본프리 아일랜드(Carbon Free Island) 목표 아래 태양광·풍력 설치가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력 소비량은 그만큼 빠르게 늘지 않고, 해저 케이블 증설도 더딥니다. 공급은 쏟아지는데 내보낼 출구가 막혀 있는 구조가 심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해저 케이블 추가 증설, ESS(에너지저장장치) 보급, 제주 내 수요 확대(전기차·데이터센터 유치) 등을 해법으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들입니다. 제주 SMP 문제는 앞으로 수년간 제주 에너지 시장의 핵심 이슈로 남을 것입니다.
투자자라면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
만약 태양광 발전 투자를 검토 중인데 제주도가 후보지라면, 반드시 다음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첫째, 과거 3~5년간 제주 SMP 평균이 육지 SMP 대비 얼마나 낮은지를 계절별로 분석해야 합니다. 단순히 "SMP가 얼마"가 아니라 제주와 육지의 격차 트렌드가 핵심입니다.
둘째, 출력제한 이력과 향후 전망을 확인해야 합니다. 제주 내 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어날수록 출력제한 빈도는 높아집니다.
셋째, 고정가격계약(FIT)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SMP 변동에 관계없이 정해진 가격을 받는 FIT 계약이 있다면 이 리스크를 상당 부분 회피할 수 있습니다. FIT와 변동형 정산의 차이는 17회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다음 회 예고
5회에서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SMP는 어떻게 변해왔나" 를 다룹니다. 오일쇼크, 원전 비리 사태,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SMP를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20년간의 역사를 한 편에 담습니다.
📌 이 시리즈는 에너지 시장 분석 전문가가 작성한 전력시장 입문 연재입니다. 매주 1~2회 업로드됩니다.